한국사사건

훈민정음 창제, 세종은 왜 새로운 글자를 만들었을까?

브릿지H 2026. 6. 30. 10:09

훈민정음 창제, 세종은 왜 새로운 글자를 만들었을까?

한글은 매일 읽고 쓰는 만큼 그 특별함을 잊기 쉽습니다.

저 역시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해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 시대에 왜 별도의 표기 방식이 필요했는지까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은 많지 않았어요.

 

요즘은 K팝과 한국 드라마를 계기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얼마 전 대성이 미국 코첼라 무대에서 한국어로 트로트를 부르고,

전광판에 영어가 아닌 한글이 크게 등장한 장면도 눈에 남았습니다.

 

조선 사람들의 말을 제대로 적기 위해 탄생한 글이 이제는 한국의 음악과 문화를 세계에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종은 왜 오랫동안 사용해 온 한자를 두고 훈민정음을 만들었을까요.

조선에는 왜 새로운 글이 필요했을까

우리말과 한자는 서로 맞지 않았다

조선 사람들은 우리말로 대화했지만 책과 공문서는 주로 한자로 작성했습니다.

한자를 읽고 쓰려면 오랜 공부가 필요했기 때문에 교육받을 기회가 적었던 사람에게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습니다.

 

한자의 뜻과 소리를 빌려 우리말을 표현하는 이두도 사용됐습니다.

하지만 이두 역시 한자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었고, 우리말의 어순과 발음을 자연스럽게 옮기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았습니다.

 

세종은 훈민정음 서문에서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말하고 싶은 내용이 있어도 이를 기록하지 못하는 백성을 안타깝게 여겨 새 글을 마련했다는 설명도 남겼습니다.

훈민정음 창제의 출발점은 한자를 없애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말을 알맞게 적고, 평범한 사람도 자신의 뜻을 표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일이었습니다.

 

예전에는 훈민정음을 단순히 배우기 쉬운 글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다시 살펴보니 그보다 앞선 문제는 우리말은 존재했지만, 이를 편리하게 옮길 수단이 부족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세종은 어떻게 훈민정음을 만들었을까

1443년에 완성된 스물여덟 자

『세종실록』에는 1443년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초성·중성·종성을 합쳐 하나의 음절을 이루고, 간단한 구성으로도 다양한 말을 적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흔히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함께 창제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기록에서는 세종을 중심 인물로 밝히고 있습니다.

최항·박팽년·신숙주·성삼문·정인지 등은 이후 이 체계를 연구하고 해설하는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1446년에는 제작 목적과 각 소리의 값, 운용 방법과 사용 예시를 담은 『훈민정음』 해례본이 간행됐습니다.

새 글을 만든 데서 그치지 않고, 누구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서까지 남긴 것입니다.

 

📜 역사적 맥락

세종이 모든 작업을 아무런 도움 없이 혼자 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실록은 임금이 직접 28자를 지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집현전 학자들은 해례 작성과 연구, 활용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최만리는 왜 반대했을까

기존 질서가 흔들릴 수 있다는 걱정

1444년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를 비롯한 일부 신하는 언문 제작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습니다.

당시 조선의 학문과 행정, 외교는 한문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별도의 글을 만드는 일이 중국의 제도를 따르던 국가 질서에 어긋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익히기 쉬운 방식에만 의존하면 한문과 성리학 공부를 소홀히 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했습니다.

충분한 논의 없이 새로운 제도를 서둘러 시행하는 점도 문제로 삼았습니다.

따라서 최만리의 반대를 백성이 배우는 것을 무조건 막으려 한 행동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세종이 물러서지 않은 이유

세종은 신하들의 상소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특히 재판을 받는 사람이 문서의 내용을 알지 못해 자신의 사정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 현실을 중요하게 바라봤습니다.

국가가 사용하는 글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세종은 새로운 표기 수단이 백성의 생활뿐 아니라 행정과 재판의 정확성을 높이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처음에는 최만리를 새로운 시도를 가로막은 인물로만 기억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질서 안에서 바라보면 전통적인 국가 운영을 지키려는 신하들과

현실의 불편을 해결하려는 세종의 생각이 충돌한 사건에 가까웠습니다.

훈민정음은 어떤 점에서 뛰어날까

소리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글자에 담았다

기본 자음 ㄱ·ㄴ·ㅁ·ㅅ·ㅇ은 혀와 입술, 이와 목구멍 등 발음 기관의 형태를 본떠 만들었습니다.

관련 있는 소리는 기본 모양에 획을 더하는 방식으로 구분했습니다.

ㄱ과 ㅋ처럼 비슷한 계열의 소리가 생김새에서도 연결되기 때문에 구조를 이해하기 쉽습니다.

발음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옮겼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적은 수로 다양한 말을 적을 수 있다

모음은 하늘·땅·사람을 상징하는 기본 요소에서 출발했습니다.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고 이를 한 칸 안에 모아 쓰도록 구성해 하나의 음절을 나타냈습니다.

처음 마련된 것은 자음 17자와 모음 11자였지만, 이들을 서로 조합하면 수많은 소리를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말이 생기더라도 발음에 맞춰 적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창제 과정이 문헌으로 남아 있다

훈민정음은 누가 언제 어떤 목적으로 만들었는지뿐 아니라, 각각의 형태가 만들어진 이유까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해례본에는 소리의 원리와 결합 방법, 실제 예시가 구체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훈민정음』 해례본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한글 자체가 아니라 창제 원리를 기록한 문헌이 등재된 것입니다.

 

한글을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라고 단정해 다른 체계와 우열을 가릴 필요는 없습니다.

발음과 형태의 관계가 논리적이고, 적은 기호로 여러 소리를 나타내며,

설계 과정이 상세하게 전해진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특별합니다.

새 글은 어떻게 사람들의 생활에 들어왔을까

훈민정음이 반포됐다고 해서 조선 사회 전체가 곧바로 이를 받아들인 것은 아닙니다.

공식 학문과 행정에서는 오랫동안 한문이 중심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새 글은 편지와 노래, 불경을 풀이한 책과 생활에 필요한 안내서 등을 통해 점차 퍼졌습니다.

한문 교육을 받기 어려웠던 여성과 평민도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기록할 수 있게 됐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말로 된 문학과 지식이 축적됐고, 한글은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오늘날 외국인이 K팝의 노랫말을 읽거나

한국 드라마의 대사를 이해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하는 모습은 그 변화의 다음 장면처럼 느껴집니다.

선의 백성을 위해 만든 글이 수백 년 뒤 다른 나라 사람에게

한국을 이해하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세종도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너무 익숙해서 지나쳤던 한글의 가치가 세계의 관심을 통해 오히려 새롭게 보이기도 합니다.

훈민정음 창제 핵심 정리

훈민정음 창제의 주요 내용
항목 내용
창제자 조선 제4대 왕 세종
창제 시기 1443년, 세종 25년
처음 구성 초성 17자와 중성 11자, 모두 28자
해례본 간행 1446년, 세종 28년
목적 우리말을 알맞게 적고 백성이 자신의 뜻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반대 인물 최만리를 비롯한 일부 집현전 학자
주요 특징 발음 기관을 본뜬 자음과 규칙적인 조합 방식
역사적 가치 창제 목적과 구조가 해례본에 구체적으로 기록됨

훈민정음 FAQ

처음부터 한글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나요?

세종이 만든 당시의 이름은 훈민정음이었습니다.

실록에서는 언문이라는 표현도 사용됐으며, 오늘날의 ‘한글’이라는 명칭은 훨씬 뒤에 널리 자리 잡았습니다.

언문은 훈민정음을 낮춰 부른 말인가요?

언문을 비하의 의미로만 사용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당시 기록에서 새 글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명칭으로도 쓰였으며, 시대와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인가요?

서로 다른 문자를 하나의 기준으로 비교해 순위를 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발음 기관을 바탕으로 자음을 만들고, 관련된 소리를 일정한 규칙으로 나타냈으며,

그 과정이 문헌으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독창성과 체계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백성의 말에서 세계의 글로

세종이 해결하려 했던 것은 단순히 새로운 기호를 만드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말로만 전해야 했던 사람이 직접 읽고 기록할 수 있도록 방법을 마련하는 일이었습니다.

 

관련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의 훈민정음 창제 기사최만리 등의 반대 상소와 세종의 반박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매일 사용하는 한글이지만 그 시작을 따라가 보니 익숙함 속에 가려졌던 의미가 보였습니다.
세종이 열어준 기록의 길은 지금도 우리의 노래와 이야기,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세계 무대와 온라인 공간에서 한글을 마주할 때마다

수백 년 전의 선택이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훈민정음 창제는 백성의 불편을 살핀 한 왕의 고민이 한 나라의 언어생활을 바꾼 중요한 한국사 사건이었습니다.

 

2026년 기준 안내

본문은 조선왕조실록과 우리역사넷, 국가유산포털 및 유네스코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창제 과정에서 집현전 학자들이 담당한 구체적인 역할은 연구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습니다.